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리 퀴리 (문단 편집) === 유년기 === [[러시아 제국]] 치하 [[폴란드 입헌왕국]] [[바르샤바]] 태생으로 본명은 '마리아 살로메아 스크워도프스카(Maria Salomea Skłodowska)'이다. 마리 퀴리로 훗날 알려지게 되는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는 1867년 11월 7일[* 바르샤바에 위치한 그녀의 생가는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.], 가난한 교육자 부부의 다섯 형제자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. 그의 부모님은 교사였다. 아버지 [[https://pl.wikipedia.org/wiki/Władysław_Skłodowski|브와디스와프 스크워도프스키]](Władysław Skłodowski, 1832~1902)는 [[물리학]]을 가르치는 교감이었고, 어머니 브로니스와바 보구스카(Bronisława Boguska)는 바르샤바에서 손꼽히는 명문학교의 교장이었는데 폐결핵을 앓게 되면서부터 집에서 요양하게 된다. 부모님은 금슬이 좋았고 특히 아버지가 가정적이라서 마리 퀴리의 가정은 화목했다.[* 여담으로 마리 퀴리와 그녀의 두 딸 이렌 졸리오퀴리(Irène Joliot-Curie)와 에브 퀴리(Ève Curie) 또한 부부 금슬이 좋은 편이었다. 다만 이렌은 방사능 피폭으로 58세로 세상을 떴으며 남편 역시 같은 나이로 죽었다. 에브는 화학 쪽에 참여하지 않아 만 102살 장수를 누렸으며 50세에 혼인했다.] 마리 퀴리가 훗날 학자로서의 길을 가게 된 데에는 이런 가정환경의 영향이 컸다. 하지만 당시 러시아 치하의 폴란드[* 위인전에는 마리의 친한 반친구 오빠가 폴란드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서 총살당했지만 구할 방법이 없어 슬프게 다 울었고 장례식에서 다들 통곡해야 했다는 일화도 나와있다.]에서 마리 퀴리의 아버지가 [[폴란드어]]로 쓴 학생의 답을 정답으로 처리했다는 것 때문에 교감 자리에서 쫓겨나 평교사로 강등되다가 결국엔 교사직을 박탈당하면서 가족들의 불행이 시작된다. 아버지는 애국심이 깊어 [[러시아어]]를 쓴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. 설상가상으로 평소 신중했던 아버지가 큰돈을 사기당하면서 생활이 급격하게 어려워진다. 결국 아버지는 집을 [[하숙]] 형식으로 바꾸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부업으로 생계를 꾸렸다. 그러던 어느 날 하숙생 중 한 명이 [[장티푸스]]에 걸렸는데, 그 병이 마리 퀴리의 언니들에게 전염되었고, 둘째 언니인 브로니스와바는 다행히 회복했으나 첫째 언니 조피아가 병을 이기지 못하고 12살의 어린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. 또한 마리아가 10살이 되던 해에는 [[결핵]]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하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. 이런 환경 탓인지 마리도 기관지염을 자주 앓았다. 마리 퀴리는 공부는 대단히 잘 했지만 가난한 데다가 바르샤바 대학교는 [[남녀공학]]이 아니라 [[남자대학교|남대]][* 이 때는 남대였지만 나중에 남녀공학으로 바뀐다.]여서 여학생의 입학을 허가하는 [[프랑스]]로 [[유학]]할 수밖에 없었다. 하지만 집안이 워낙 가난했기 때문에 유학자금을 모으기 위해 부유한 집안의 [[가정교사]]로 일하며 돈을 모으다가 23세가 되어서야 프랑스로 떠날 수 있었다. 가정교사로 일하던 시절에 하마터면 학업을 포기할 뻔한 일이 있었다. 가정교사로 일하던 부잣집의 아들과 사랑에 빠졌으나, 가난한 집안 여성을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남자 집안의 반대로 헤어졌던 것이다. 만약 이때 결혼에 성공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위인전에서 '퀴리 부인', '마리 퀴리'란 책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. 이때 타이밍 좋게도 [[소르본 대학교]]에서 합격통지서가 와서, 어차피 집안 반대로 결혼하기 힘들었던 애인과 눈물로 이별하게 된다. 마리 퀴리의 10대 시절에 있었던 일로 1990년대 한국 중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렸던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.[* 참고로 해당 에피소드는 [[러시아 제국]]의 황제인 [[표트르 대제]]를 피터, [[파벨 1세]]를 폴이라고 영어식 인명으로 표기했다. [[중역]]으로 인한 오류로 보인다.] 당시 [[폴란드]]는 [[러시아 제국]]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, 러시아는 [[폴란드 입헌왕국]]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다는 이유로 폴란드를 [[프리비슬린스키|직할령]]으로 삼고 폴란드의 학생들에게 [[러시아어]]와 러시아 역사를 배우게 했다. 어느날 러시아 장학사가 마리의 학교를 불시에 방문해서 평소 성적이 좋다는 마리에게 [[러시아어]]로 러시아의 위인들과 통치자, 주기도문 등에 대해 질문하자, 마리는 러시아어로 유창하게 대답하며[* 실제로 마리는 폴란드어, 프랑스어, 러시아어 등 3개 언어를 할줄 알았다.] 장학사를 만족시켰다. 하지만, 마리 퀴리는 마음 속으로 폴란드인으로서 커다란 모멸감을 느끼고 장학사가 자리를 뜨자 담임을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. 이는 마리 퀴리의 위인전에도 자주 등장하는 에피소드로 딸 에브 퀴리가 쓴 전기 《마담 퀴리》에도 언급된 내용이다. 마리의 폴란드에 대한 애국심을 강조하기 위해 사실을 바탕으로 각색한 이야기일 가능성도 있지만, [[폴로늄]]의 이름을 러시아에서 독립도 안 된 폴란드의 이름을 따서 지었을 정도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. 이후 마리 퀴리는 폴란드 동부영토를 [[프리비슬린스키]]라는 직할령으로 만든 장본인인 [[알렉산드르 2세]]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내심 기뻐하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